• 주인 없는 인기척
    2017
    인왕시장, 서울
    우리 지금 맞남

    뜻을 비슷하게 하는 작가들과 인왕시장에서의 전시를 준비하면서 신진작가로서 적당하고도 낯설었으며, 미술계에서 표류하고 싶지 않은 동시에 희석되고 싶지 않은 태도로 시장을 오가는 사람들을 관찰했다. 그곳에서 기성세대와 여성의 노동, 시장과 어울릴 마음이 없을지도 모를 교만한 신분의 작가가 가진 부채의식과 대물림을 표현했다. 어쩐지 지나치기엔 자꾸만 뒤가 밟히는 찝찝함을 쿨하게 인정하기로 하고, ‘우리 이제 맞남’에서 ‘주인 없는 인기척’을 전시한다.

    1.
    노점과 상점에서 채소를 내다 판다. 붉은 바구니에 일렬로 디피된 채 손님을 기다린다. 진열대 뒤편으로 포장이 뜯기지 않은 박스들과 흙더미, 정돈되지 않은 채소잎들이 널브러져 있다. 칸칸이 옆 상점과 촘촘히 이어져 그 경계를 잘 살펴야 한다. 천 원 이천 원 깎을 수 있고 덤으로 한 줌씩 더 얻을 수 있다. 곧이어 맞은편 마트에서 입구부터 큰 음악소리와 현란한 전단지가 날린다. 20프로 세일, 수요일 특가세일, 주말 세일 등등의 사람이 아니어도 호객해 줄 기타 여러 장치에 의해 큰 소리를 낸다. 마트 안으로 들어서면 계절과 상관없이 체온이 보장된다. 여름엔 빵빵한 에어컨과 겨울엔 따뜻한 난방이 사시사철 고객의 니즈를 저격한다. 하나하나 가격을 따져 묻지 않아도 상품가격이 스티커로 부착되어 있고 장을 보는 내내 간섭받지 않고 가능한 소비만큼 셈 해가며 장을 본다. 익숙한 소비패턴은 손쉽고 간편하다. 어릴 적 시장은 어른들이나 가는 곳이라고 생각했지만 나는 어른이 되어도 시장에는 잘 가지 않는다. 텁텁한 냄새와 물 비린내, 정돈되지 않는 길목과 각 상점마다 마주보고 물건을 흥정해야 하는 구조가 어색하고 불편하기 때문이다. 시장이 가진 역사와 특수성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버젓이 그 주변을 에워싸는 대형마트들을 보면 기분이 이상하다.

    2.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를 고민하면서, 역시나 비켜설 수 없는 지나치기엔 거슬리고 메인으로 내세우기엔 이렇다 할 힘없는 것들이 내뿜는 옅은 에너지들을 묵과할 수 없었다. 그 낮은 소리의 저음들은 앵간한 주파수로는 잡히질 않는 고요 속에 외침과 같고 무당이나 들을 법한 소리들이었다. 나는 이 장소가 낯설고 이곳도 내가 낯설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우리는 소비자도 판매자도 아닌 신분으로 시장이라는 공간 중 일부에서 전시한다. 전시라는 형식은 이 장소와 낯선 듯 닮았는데, 진열대 위에 디스플레이 된 보임들의 현장인 시장이 가진 특수성이 그 예라고 할 수도 있겠다. 어차피 늘 하던 작업 생경한 장소에서 펼쳐 보인들 무슨 소용이 있나 싶고, 무슨 말을 해야만 하는 그 창조라는 단어에 묶인 조작된 이야기가 스스로도 설득이 필요하다는 마음에서 일고 있는 옅은 물결 이 시발점이었고 이 장소에서 느끼는 어색함에 대해 스스로 질의하고 답해보는 과정이 우리의 작품이 되었다.

    3. 거울
    시장 입구 왼편에 큰 거울 두어 개가 걸려 있다. 몇 개의 거울들이 기둥에 메인 듯 박힌 듯 걸려있다. 왜 그곳에 그것이 생겨버렸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거울의 디자인이 퍽이나 엔틱해서 이곳 분위기와 이질적인 듯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4. 사람들
    시장 곳곳에 걸린 간판을 보면서 상인들의 삶을 유추해 본다. 간판 이름들이 제각각 다르고 디자인도 통일된 듯 보이지만 제각각 개별적이다. 마트처럼 질서 있게 보기 편한 시각 정보를 위해 도시개발로 시장이 한창 개발될 그때 다듬어진 간판들이 일렬로 줄지어 보인다. 집계된 상가만을 위한 것이기에 집계되지 못한 노점 상인들은 배제되어 있다. 사업 안에 포함된다는 건 공적으로 인정을 받았다는 승인의 재확인처럼 보인다. 한데 주변부에는 꽤나 집계될 수 없는 사람과 삶이 널브러져 있다. 나는 집계될 수 없는 삶이 가진 부족함보다, 집계할 능력이 없는 시스템의 무감각함과 무섬세함을 먼저 떠올리고 말았다.

    5. 이물감
    전시가 가진 의미. 작가라는 이름으로 특정 또는 특수한 장소에서 보게 한다는 것에서 오는 이물감을 뱉어버리거나 침묵하거나 빨리 삼켜버리지 않고 간도 보고 입안에서 이리저리 굴려도 본다. 어쩐지 어색하고 뱉을까 삼킬까 고민되는 이물감을 천천히 음미에 가깝게 감상해 보는 것.

    <sign>
    50x150x10cm, 모래, led, 2017
    각 알의 모래는 낱개로는 먼지에 가깝다. ‘모래’라는 명사는 낱개의 개수들이 샐 수 없이 모였을 때 그제야 불리지만, 물성은 모여 있어도 쉽게 흩어지고 부서지고 먼지처럼 자꾸만 경로를 이탈한다. 흩날리지만 가라앉는 이것들은 어떤 미제사건의 공백처럼 무기력함을 제공한다. 바람처럼 허공에 뿌려지는 말과 소리, 백지 위에 기록되고 저장되는 수많은 개인의 텍스트들은 뭉쳐있지만 흩어져, 질량이 있음에도 잴 수 없는 모래의 딜레마에서 기시감을 준다. 은근하게 묻혀있는 빛은 개별적이면서 동시에 집단적인 모래 안에서 우리가 감지한 진행형 사인이다.

    <동화의 끝 -요르고스>
    30x30x170cm, 도깨비바늘, 도꼬마리, 팰트, led, 요르 고스의 글, 2017
    어릴적 보물찾기 놀이에서 우연히 매장한 강아지를 발굴한 죄책감을 인터넷 대필 작가에게 판매한다. 정착하지 못하는 기억의 파편과 유사물의 교란에 기억은 파생텍스트로 꾸준히 기울고 있다.

    <인기척감지기>
    각 3x3x150cm, 00:02:23 비디오 트레일러, 머리카락, 스티커, 2017
    천장 곳곳에 매달려 있는 수개의 머리카락은 거의 눈에 보이지 않지만 관객(혹은 행인)의 목덜미를 스치면서 무엇인가 있는 미립한 감각만을 유도하며, 영상에서는 시 낭송을 통해 불분명한 등장인물의 이미지, 모녀, 머리카락, 춤, 되물림 같은 키워드들을 은유한다.

    정숙이 매달립니다 / 전시된 것은 이름이었으나 / 상속한 것은 그의 노동이었습니다
    탈출하지 못한 이름들은 목덜미에 내렸고 / 내 감각은 아주 작은 날파리거나 오감지였다고 쪽대본은 읽혀집니다
    들,숨과 날,숨 사이의 잊혀짐을 기억합니다 / 감각을 묻히는데 얼마의 성공을 거뒀으나, 그 실패는 여전한 유령으로 증명됩니다
    참을 수 없는 목선과 붉어진 뒷목을 움켜쥐고 거울 앞에서 딸의 머리카락을 쓰다듬겠습니다

    <숏타임(3시간)>
    50x50x85cm, 천, 스티로폼, 2017
    ‘숏타임(3시간), 롱타임(6시간), 풀타 임(12시간)’ 중 가장 작고 짧은 서비스. 등비급수하는 세 가지 원통 은 2rπ에 따라 점유하는 영역과 시간이 다르며, 누군가를 밟고 지나는 찝찝함에도 데굴데굴 잘도 돈다.

    <어쩌구 저쩌구>
    20x40x60cm, 깔때기, 사진, 2017
    은지와 예지 사이. ‘어쩌구 저쩌구’ 같은 불특정한 언어의 전달은 완벽한 오하게 오해된다.

    <지워지면서 그려지는 그림>
    50x50cm, 걸레질, 2017
    시간을 지면이란 평면에 놓았을 때 자유로운 타인은 없다. 그 어떤 사물이나 공간도 예외가 없다면 숨을 몰아 쉬는 생 위에선 것들은, 온도가 없는 것들보다 더 빨리 시들고 죽어갈 것이다. 저기 육중한 건물, 번쩍이는 타일 안으로 영혼보다 시멘트로 그득한 내면은, 흐르는 존재보다 견고해서 조금 더 오래도록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외형이란 늙고 때로는 흠이 생기거나 움푹 파여야 하는 예견된 숙명을 거역할 수 있을지. 그림을 그리자. 원을 그리자. 삶을 그리고 죽음을 그리자, 변하는 것을 그리고 영원한 것을 그리자. 그림을 지우자. 덫 씌워진 묵은 때, 바란 적 없던 주름 같은 시간의 명을 한 겹씩 한 겹씩 지워보자. 과거의 시간과 모르는 이들, 낯선 시대의 풍경의 민낯이 실은 그곳에, 지층을 이루어 견고하게 서 있었음을. 그리면서 지워지고 지우면서 그려지는 속살들.